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키타 히데이에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일본]] [[센고쿠 시대]]의 [[다이묘]], 아명은 '''하치로'''(八郎)다. [[우키타 나오이에]]의 장남[* 위로 의붓 형인 미우라 도쥬마루가 있어서 우키타 히데이에를 차남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.]으로 비젠 오카야마 57만 4천 석의 다이묘였다. 별명은 비젠의 재상(備前宰相)이었다. 당시 기준으로 큰 키(약 170cm)[* 당대 조선의 평균 신장이 161cm, 일본은 155cm 수준이었으니 현대 기준이라면 보통이겠지만 당대 기준이라면 장신에 속한다. 지금으로 치면 대략 185cm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. 참고로 [[오다 노부나가]]의 키가 저정도였다.]를 가졌었고, 아버지[* 부친인 우키타 나오이에는 평생이 모략과 암살, 그리고 음모로 점철됐던 인물이다.]와는 다르게 성실하고 인정이 깊었다고 한다. [[도요토미 히데요시]]의 양자이기도 하니 [[금수저]]를 물고 태어났으나 그 자리의 무게 때문에 크나큰 굴곡 진 인생을 지냈다. [[임진왜란]]에서는 20세의 나이로 총대장을 맡았고, 1년 후 [[행주대첩]]에서 [[승자총통]]을 잔뜩 연결한 변이중 화차의 포격으로[* 행주전투 당시 권율 장군의 조선군은 병력 숫자는 좀 적지만 대신 화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. 행주 전투 당시 우키타는 전투를 독려하러 최전열에 나갔고, 변이중 화차는 근거리에 포격을 퍼붓도록 설계된 병기였으므로 일본군 최전열에 집중 사격을 퍼부었다. 조선이 운용한 [[신기전]], [[승자총통]], 각종 화포, [[비격진천뢰]] 등의 화력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죽지 않은 게 기적이다.]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중상을 입었고 28살에는 [[세키가하라 전투]]에 참전했다가 패배하는 바람에 유배되어 83살에 사망하는 그 순간까지 무려 55년 동안 [[태평양]]의 작은 섬 [[하치조마치]]에서 [[유배]] 생활을 했다. 그나마 본인이 83살까지 장수했고 무사히 가문이 존속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